「巧團圓」与「金英哲傳」中男性形象的政治意识研究

(整期优先)网络出版时间: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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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巧團圓」与「金英哲傳」中男性形象的政治意识研究

刘楠

韩南大学

李漁(1611-1680)의 「巧團圓」은 아버지 尹小楼가 죽은 줄 알고 있던 아들을 만나게 되지만 친아들인지도 모르고 양자로 삼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아들임이 밝혀지며 가문의 대를 이어가는 기이한 이야기이다. 洪世泰(1653-1725)의 「金英哲傳」은 17세기 후금과의 전란을 배경으로 주인공 金英哲은 요동정벌의 조선 지원군으로 출정했다가 포로로 잡혀 그곳에서 가정을 이룬다. 하지만 가문의 독자였던 영철은 대를 잇기 위해 중국에서 만난 처자를 버려두고 천신만고 끝에 조선으로 돌아온다. 본고는 전란 배경의 중·한 17세기 가족의 離合 서사에서 「巧團圓」과「金英哲傳」의 男性形象化으로 본 정치의식에 대해 보도록 하겠다.

1.1. 「巧团圆」

「巧团圆」은 李渔 의화본 소설 「生我楼」의 기본 서사를 유지하면서 개작했다. 「교단원」에서 曹玉宇 부녀의 인물 설정과 역할을 강화하여 ‘가문의 대 잇기’를 보다 강조하고 있다. 우선 친부 尹小楼와 장인 曹玉宇는 모두 姚继를 가문의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姚继가 과거 시험에 급제함으로써 양쪽 가문에 세습되는 관직이나 가산의 도움 없이 오로지 개인의 노력으로 ‘가문의 대 잇기’에 성공한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보아 작가 李渔는 明의 유민으로 淸에 귀순하지 않고 겨우 살아남았지만 문인으로서의 입신양명과 가문의 부흥이라는 욕망이 姚继의 성공을 통하여 절박함과 귀속감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가문의 대 잇기’가 과거 급제를 통해 실현된다는 설정은 작가 李渔가 明末清初의 왕조교체기에 문인으로서의 입신양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淸을 인정하지만 그 뿌리는 곧 明이라는 것을 함의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曹玉宇의 아내가 姚继는 姚씨 집안 친아들이 아니라는 소문을 듣고 그를 가문의 상속자(데릴사위)로 지정하는 것을 반대한다. 하지만 曹玉宇는 성숙한 청년으로 전란에서 가족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도 올바른 선택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에서 曹玉宇는 출신이 불명확한 姚继에 대해 오직 그의 인간됨을 보고 조씨 가문의 상속자로 삼겠다는 현명한 결정을 한다. 그런데 명청교체기에 淸은 인재를 등용할 때 출신 성분으로 明의 유민들을 배제했다. 그래서 李渔는 淸의 인재 등용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능력에 의해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 정치의식을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작자 李渔는 주인공 姚継를 통하여 인간 처세에서 善의 중요함을 드러내는 교화의식과 더불어 정치의식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다.


‘나는 엊그제 양부를 샀던 행위는 의로운 일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외로운 과부를 돌보는 일은 선한 마음인데 왜 하나만 하고 다른 하나를 포기하려고 하는가! 현재 우리 양남일녀는 괴로운 처지를 하소연할 곳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다. 차라리 홀아비, 과부, 고아가 함께 하면 세상의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1


위 인용문은 姚継가 전란 중에 약혼녀를 구하러 갔다가 늙은 노부인을 구하게 되는 과정의 일부이다. 이 대목에서 姚継의 선한 마음이 잘 드러난다. 선한 姚継의 행동은 양부, 양모가 친부, 친모라는 극적인 재회를 이루는 바탕이 된 것이다. 따라서 李漁는 姚継를 통해 선의 중요함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李漁는 명청교체기의 새로운 왕조인 淸을 왕조 재건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明의 유민들을 포용하여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앞으로 있을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1.2. 「金英哲傳」

「金英哲傳」에 그려진 남성 주인공 金英哲은 평민 출신이다.


金英哲은 평안도 영유현 중종리 사람으로, 대대로 무과에 급제한 집안 출신이었다. 영철은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를 좋아하여 영유현의 무학이 되었다.2


우선 서두에 나오는 金英哲과 조부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서사는 전란 중 金英哲의 ‘가문의 대 잇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金英哲은 전란 중에 포로가 되었을 때, 어떻게든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심리적 투쟁이다. 또한 다음 인용문을 통해 가문의 대를 잇는 임무에 대한 情理갈등에서 투쟁하는 金英哲의 남성 인물형상을 보도록 한다.


영철이 나이 십구 세인데 아직 장가들지 않았다. 부친 여관과 영철은 모두 독자로서 형제가 없었다. 떠남에 조부 영가는 울면서 이르기를 ‘네가 돌아오지 못하면 우리 집안은 대가 끓어지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라 대답했다.3


金英哲의 조부는 전장에 나가는 김영철에게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꼭 돌아와야 한다고 다짐받는다. 김영철은 중국에서 두 번이나 결혼하게 되지만, 결국 중국 처자를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와 조부와 부모를 봉양한다. 그는 조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국에서 이룬 가정과 처자를 버렸고 전란에서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金英哲은 언젠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 처자식을 저버리고 와 두 곳의 처자식들로 하여금 평생을 슬픔과 한탄 속에서 살게 했으니, 지금 내 곤궁함이 이 지경에 이른 게 어찌 하늘이 내린 재앙이 아니겠는가!’4


마지막에서 이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한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할 남성인 金英哲은 조선으로 돌아가 조부에게 약속한 가문의 대를 잇는 것과 이국 처자에 대한 情이 충돌함으로 고뇌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전자를 택하고 후자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였고, 결국 평생 동안 중국 처자를 버렸다는 후회로 비참하게 일생을 마쳤다.

그러므로 金英哲의 귀국은 조부와 했던 약속의 실천이고 ‘가문의 대 잇기’의 기나긴 과정이었다. 「金英哲傳」의 후반부는 귀국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두 번의 결연과 가족 이별 즉 가족을 버린 일에 대한 金英哲의 ‘죗값 치르기’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 洪世泰는 전란의 배경에서 情理 갈등에서 피해를 당하는 김영철의 인물형상을 설정하여 결국 그의 불우한 삶을 통하여 당시 통치계층을 비판하는 주제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巧团圆」과 「金英哲传」에 나타난 정치의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巧团圆」에서 李漁는 명나라 遺民이자 지식인으로 등장인물의 출세를 통하여 왕조 교체기의 작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지식인들에게 대리 만족과 동시에 새 왕조에 대한 귀속감을 갈망하는 정치적 주제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李漁는 교화의식과 더불어 淸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金英哲传」은 洪世泰가 전란의 배경에서 情理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김영철이라는 인물로 형상화한다. 그래서 그의 불우한 삶을 통하여 당시 통치 계층에 대한 비판으로 주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에 관한 연구는 후속적인 연구 작업을 통해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李 漁,『笠翁十種曲』, 上海朝記書莊印行, 1918.

홍세태, 『柳下集』, 임형택 편, 『이조후기 여항문학총서』1권, 여강출판사, 1986.


1 我前日買箇老漢做父,也算是一場義舉.憐孤恤寡總是一片心腸,爲什麼做了一件又丟了一件.況且我們這兩男一女都是無告的窮民,索性把鰥寡孤獨之人合來聚做一處,以補天地只缺,何等不好?(위의 책, 28쪽.)

2 金英哲平安道永柔縣中宗裏人也 其家世武科 英哲自幼好馳馬 善射爲本縣武學戊午.(홍세태, 柳下集권9, 485쪽.)

3 英哲年十九未娶 父汝灌及英哲皆獨身無兄弟 臨行祖永可泣而送之 曰汝不歸則吾世絶矣 英哲曰必歸也.(위의 책, 485쪽.)

4 淚下沾襟嘗謂人曰 妻子無負於我 而我實負之 使兩地妻子沒身悲恨 今吾之困窮至此 豈非殃與.(위의 책, 4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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